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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간 카레이싱 현장에서 활동한 모터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동안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F1 그랑프리, 르망 24시, 사막 랠리, 포뮬러 닛폰, F3, 카트 등 수많은 굵직한 이벤트들을 지켜봤고 포뮬러 르노, 랠리카 등 다양한 경주차들을 시승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경주 안내서인 모터스포츠 단행본도 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할만큼 늘 모터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예선 탈락에 익숙한 F1 낙제생들

페이지 정보

글 : 김병헌(bhkim4330@hanmail.net)
승인 2017-04-25 19:18:45

본문

F1 그랑프리에서는 토요일에 펼쳐지는 예선 성적에 따라 다음날 결승전 출발 순서를 정한다. 결승 레이스는 예선 성적을 토대로 3m 간격으로 지그재그로 줄지어 출발준비를 한다. 물론 예선에서 가장 빨랐던 드라이버가 결승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F1 팬들 사이에서 예선전은 결승전 못지않게 놓쳐선 안 될 중요한 경기로 평가된다.

 

현재 F1 그랑프리에선 107% 룰이 적용되고 있다. 이 룰은 전체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드라이버가 기록한 랩타임의 107%, 즉 1.07배가 넘으면 아예 결승 진출을 금지시키는 룰이다. 예를 들어 예선 1위 드라이버의 랩타임이 1분30초, 즉 90초라면 90×1.07=96.3이 되어 96.3초, 다시 말해 1분36초3 이상의 랩타임을 기록한 드라이버는 예선에서 탈락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도 예선 탈락의 쓴잔을 마신 경우도 있다. F1에서 결승 그리드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 대표적인 F1 드라이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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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드라이버는 이태리 출신 가브리엘레 타퀴니. 예비 예선이 금요일 오전에 열렸던 시절, 타퀴니는 25번이나 탈락의 쓴잔을 들었고 토요일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그랑프리도 15번에 달했다. 콜로니, AGS, 폰드메탈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활동한 탓이다. 자금 부족 또한 걸림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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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서 프랑스로 국적을 옮긴 B. 가쇼도 빼놓을 수 없다. 가쇼의 첫 그랑프리는 오닉스 소속으로 출전한 1989년 브라질이었다. F1 데뷔전 예비 예선에서 탈락한 그는 이듬해 콜로니로 옮겼지만 상황은 더 약화되었다. 16번의 그랑프리에 참가해 단 한 차례도 결승 그리드에 오르지 못했다. 라루스와 퍼시픽 팀에서의 성적 역시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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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태리팀 콜로니 소속으로 활동한 R. 모레노도 예선에서 숱한 좌절을 맛보았다. 1989년에 네 차례 결승 그리드에 올랐지만 번번이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그 중 최악은 안드레이 모다와 함께한 1992년으로 이태리 몬자에서 팀은 참가조차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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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출신 P. 긴자니도 예선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가 F1에서 활동한 기간은 8년. 오셀라 머신으로 예선 통과에 어려움을 겪은 그는 하위권을 진전할 수밖에 없었다. 3개 팀을 오가며 91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31경기에서 결승 그리드에 나서지 못했다. 1981년 벨기에 졸더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그 다음 일곱 경기에서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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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태리 출신 아르투르 메르자리오는 1970년대 초 페라리, 윌리엄즈와 함께하며 성공적인 F1 경력을 쌓았지만 스스로 경주차를 마련해 출전한 세 시즌 성적은 형편없었다. 1978년부터 1979년까지 30회에 이르는 그랑프리에 도전장을 내민 메르자리오가 결승에 오른 레이스는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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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라리니도 F1에선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콜로니FC 187을 타고 1988년 이태리 몬자에서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약팀 콜로니에서 기대할 것이 없는 그는 당연히 그리드 진출에도 실패했다. 이후 그의 경력에는 24번의 예선통과 실패가 추가되었다. 오셀라와 람보르기니 경주차의 기술규정 위반으로 인해 실격당한 두 차례 그랑프리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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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 출발 대비 참가 횟수를 보면 B. 슈나이더 역시 초라한 커리어다. 총 34경기에 참가했으나 출발은 9회에 그친 것. 잭 스피드 소속이었던 1990년은 더욱 아쉬움이 많은 해였다. 13회 연속으로 예비 예선에서 탈락했다. 다만 투어링카 무대에서 증명했듯이 그에게 재능이 없었던 탓은 아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라루스 소속으로 활동한 Y. 달마스는 결승에도 고정적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1989년에 AGS로 이적하면서 이전과 같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종종 예비 예선이 끝난 금요일 오전에 짐을 싸서 떠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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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 스테판 요한슨은 F1에서 10여 년을 보내는 동안 페라리, 맥라렌, AGS를 비롯한 다양한 팀에서 활동했다. 불행히도 그는 1980년 아르헨티나(쉐도우)와 1991년 영국 그랑프리(풋워크)에서 각각 예선 통과에 실패하며 F1 경력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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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반 드 포엘르의 기록도 놀랄만하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29경기에 참가했지만 결승 출발은 겨우 5회에 불과했기 때문. 람보르기니와 함께한 첫해 이몰라에서 예선을 통과할 때는 어둠을 벗어나는 듯했으나 거기서부터가 내리막길이었다. 브라밤과 폰드메탈에서 활동한 1992년에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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